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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자 컬럼] 축복을 헤아리는 시간들

Can you speak English? 구급차로 응급실에 실려갔을때 간호사가 나에게 물어온 첫 질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그날의 일들이 꿈속에서 일어난듯 다가온다.
 
2013년 12월 21일은 토론토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잊을수 없는 날이다. 왜냐하면 이날 나는 인생에서 육체적 고통의 극치를 경험한 잊을 수 없는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고통은 누구의 허락없이 수시로 마음대로 찾아오는 삶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평소에 가진 마음으로 이시련을 어떻게 받아드리느냐가 고통을 고통으로만, 아니면 그고통을 통해서 또 다른 차원의 무언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젊어서 내가 남편의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서 긴세월 동안 수 없는 병원생활과 간호가 필요할 때 그 어려움으로 인해 많은 시간 좌절하고 우울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남편의 형님되시는 분은 나에게 “젬마,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주시지 않으시고 견딜만한 고통만 주신다”고 하시면서 나의 힘든 삶을 그렇게 위로 같은 말을 들려주신 것을 아직도 내 머리 속에 인쇄가 되듯 새겨져 있다.
 
그 때 그 한마디의 말은 참으로 나에게 엄청난 힘을 안겨다 주었다. 왜냐하면 수시로 찾아오는 삶의 시련은 나를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단단하게 단련시키는 인생의 용광로 역활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사고로 인해 격게 된 그 고통으로 앰뷸런스를 부르게 되었고, 또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면서 장기입원, 대 수술과 재활원이란 곳까지 경험하게 해준 특별한 시간들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색깔의 전문가들은 나의 힘든 재활의 시간들을 따뜻한 손길들로 아픔에서 희망으로 도움을 준 수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지금의 이시간이다.
 
그런데 생사를 다투는 위급한 상항에서 ‘가는 날이 장날’ 이라고 내가 입원 하던날 밤에 간호사가 정신이 혼몽한 나에게 전지불로 닥아와서 하는 이야기가 지금 병원 전체에 전기가 나갔다고 알려주었다. 그때 나는 그 심각도를 깨달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몰핀보다 더욱 강한 진통제를 수액을 통해서 맞고 있었기에 그 간호사의 말은 아물하게 내 귓전에 울려 올 뿐이었다.
 
복도에 소란스런 소리와 함께 이른 새벽 간호사가 들어와서 “미세스 백, 오늘 수술대기이니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된다”고 일러주고 떠났다. 그때 나는 한치의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두움이 방안을 가득히 채울 때까지 수술을 기다리는 시간은 한없이 흘러갔지만 전기라는 이 무서운 힘은 한치의 나의 고통을 알지 못했다.
 
또 이틀이 지났다. 손상 받은 내 다리와 엉덩이는 피하 출혈로 인해 잘 익은 가지색깔로 코끼리 다리처럼 부어오르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오는 고통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었다. 옛 어른들의 속담에 극심한 고통을 이야기 할 때 ‘뼈를 깍는 아픔’ 이란 말이 가슴으로 와 닿았다.
 
이런 고통 중에 옆에 같은 부상으로 들어온 91세의 할머니의 이야기가 ‘젬마 이 아픔이 아기를 출산할 때보다 훨씬 더 아프다고’ 일러준 이 말에 그 순간이라도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잊을 수 없는 내 일생의 고통 중에 에피소드로 남는다. 그 때 우리의 힘든 순간을 가볍게 만들었으니…
 
입원 3일째 아침 건장한 두 청년이 들어와서 나를 수술실로 데려간다고 알려준다. 그 지루한 기다림, 아, 이제야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떠 오르기도 전에 나는 공포와 두려움이 온몸을 감싸왔다. 어떻게 이몸을 고통없이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마음이 따뜻해 보이는 마취사가 다가와서 자기 소개와 함께 나에게 어떤 마취를 받고 싶으냐고 물어왔다. 내게 주어진 이 선택에 너무나 기뻐서 생각할 여지도 없이 나는 전신마취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얼마가 흐른 후에 간호사가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깨어나라고 소리치는데 간신히 눈을 뜨니 회복실이었다. 그때 나는 아 이제 고통에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 무서운 공포가 사라짐을 느꼈지만 나는 수술 후 몇일 동안은 혼몽한 상태에서 진통제에만 의존하는 시간이 흘렀고, 그 극심했던 고통은 다소 고개를 숙였다.
 
딸이 왔다고 남편이 일러준다. 토론토란 대도시가 눈비로 자연이 모두 얼음덩어리로 변하면서 자연의 그 극치를 이루는 반면, 수만, 수십만 가정이 정전과 함께 긴 공포의 불랙아웃이 10년만에 이렇게 겨울 눈얼음 속에 덮쳤다.
 
지난 잊지 못할 2003년 8월에 온 불랙아웃은 우리집에 72시간동안 정전이 되어도 자연을 등삼아 깊은 밤 하늘을 만났고, 별을 헤아리는 어린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날 직장에서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45분이 아닌 6시간이 걸렸는데 딸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고 머리 속에 머문다. 맘, 이 불랙아웃 덕분으로 하늘의 별도셀 수 있고 자연을 만날 수 있으니 이런 대정전 사태도 가끔씩 경험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일러준다.
 
허나 이번사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추위로 인해 갈 곳이 없었고 먹을 음식조차도 쉽게 구할 수 없어 쇼핑몰로, 또 친구나 친척집에 가서 식구가 추위를 피해야 했던 상태, 그래도 인터넷 덕분으로 가족과 연락을 할 수 있었고 또 서로 도와 줄 수 있었던 것은 이 시대의 테크노롤지 덕분이라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행이 우리집은 그 와중에도 전기가 나가지 않아서 딸과 남편이 집에서 피난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이런 자연 재앙 중에도 세상 어디에서도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었으니 딸이 집으로 날아왔다. 그때 병원 방문 온 친구들이 위로의 농담으로 들려준 이야기가 “젬마씨, 사고만 아니었더라면 이곳에 이렇게 피신 온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지금 바깥은 완전히 세상 종말같이 수라장이라 일러준다.
 
딸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엄마를 위해서 하루에 25시간을 쓰고 떠났다. 아침에 어떤 친구의 이메일에 세상에서 가장 장수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명예도, 학식도, 부도 아닌 친구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라 하였다. 나는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방문해 주고, 사랑을 날아다 준 이웃이 있었기에 이렇게 회복의 나날을 맞이한다. 오늘은 또 어떤 축복이 나의 힘들고 지루한 시간을 기쁨으로 대치해 줄 수 있을까?
 
요즈음 소치동계 올림픽이란 거대한 열기의 선수들이 내마음의 긴 시간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채워주고 있으니 그런대로 쉬고 있는 하루하루도 그다지 손해 보는것 같지않다. 곧 눈이 녹고 푸른 새싹이 파릇파릇 올라올 때면 아마도 나도 긴 동면에서 자유롭게 걸을 수 있을 것을 생각하니 이런 쉼도 나에게 또 하나의 감사함의 시간이라 헤아려 본다.
 
성탄, 새해를 병원과 재활원에서 보낸 것은 내 일생의 잊지 못할 해가 아닐런지…
 
2014년 2월 17일
 
gemma baik
백경자, gemmakj@gmail.com
 
 
* 백경자 선생은 온타리오 공인간호사로 공인 국제 출산교육자이기도 하다. 온타리오 간호사 협회 회장과 한인여성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고 “진료의 길잡이”, “귀한 선물” 등 다수의 책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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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March 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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