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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왕 서거, 마하 와치라롱꼰 왕세자 지도력 미지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뒤를 이어 태국의 새로운 국왕이 될 와치라롱꼰(64) 현 왕세자가 과연 많은 갈등을 안고 있는 태국 사회의 구심점이 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푸미폰 국왕과 시리킷 키티야카라 왕비와 사이에 태어난 유일한 왕자로, 1972년 왕세자 겸 후계자로 공식 지명받았다. 영국 기숙학교와 호주 시드니 학교에서 유학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는 1980년에 탐마삿 대학에서 명예정치학 박사학위, 1987년 출랄롱꼰 대학에서 명예정치학 박사학위, 1989년에는 랑캄행 대학에서 명예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7월에 전두환 대통령이 태국을 방문했을 때 수교훈장 광화장을 수여받았고, 1992년 5월에는 정부 귀빈 자격으로 공식 방한했다.
 
온화하면서도 강직한 이미지와 성품을 지녔던 아버지 푸미폰 국왕과 달리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또 잦은 이혼 경력, 그리고 돈 문제 등으로 자주 구설수에 휘말려왔다. 다. 푸미폰 국왕의 건강이 악화되자, 지난 몇년간 아버지를 대신해 공식행사들에 참석해왔던 것도 사실이지만 국민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기 보다는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며, 특히 공식 석상에서는 눈에 띄게 불편해하는 모습을 나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푸미폰 국왕의 딸인 3명의 공주들이 비교적 활발하게 외부활동을 하는데 비해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활동을 하더라도 공무보다는 사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2015년 푸미폰 국왕 부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대규모 자전거타기 대회에 왕세자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당시 태국 내에서는 왕위 계승을 준비하기 위한 행보란 분석이 제기됐다.
 
와치라롱꼰 왕세자에 대한 국민들의 이미지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데에는 친화력이 부족한 성품 이외에 순탄치않은 결혼생활이 가장 큰 원인이 됐다. 그는 1977년 외사촌과 결혼했지만 얼마 못가 헤어졌다. 법적 이혼 절차를 밟지도 않은 상태에서 서민여성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더니 수년 후 이 여성과 재혼했다. 그러나 이 결혼도 지난 1996년 떠들썩하게 파경을 맞았다. 그로부터 5년후인 2001년 또다른 서민 여성과 결혼했지만 2014년 대형부정부패 사건에 왕세자비의 친척 3명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자 갈라섰다.
 
왕세자를 따라다는 소문에는 낭비벽과 각종 금융 스캔들 개입설도 있다. 직접 나이트 클럽과 디스코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그는 이 모든 것에 대해 부인했다. 그런가하면 왕세자가 탁신 신나왓 전 총리와의 수상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 왕세자가 탁신으로부터 엄청난 현금과 부동산을 받았다는 것이다.
 
AP통신은 태국 사회 일각에서 구설수가 많은 와치라롱꼰 왕세자의 국왕 즉위를 계기로 왕실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심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13일 보도했다.
 
[뉴시스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3&aid=0007523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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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October 13, 2016

Filled Unde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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