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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민자는 마지막까지 경찰을 믿었다

비잔 에브라히미는 2000년 이란에서 영국으로 건너왔다.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졌고 이듬해 영주권을 얻었다. 그는 브리스톨에 정착했다. 처음 배정받은 주택단지에서 심각한 차별을 당했다. 2005년, 주민 중 하나가 그에게 끓는 물을 부었고, 그는 다른 단지로 배정받았다. 2006년부터 살해당한 2013년까지 한 차례 더 집을 옮겼고 경찰 및 999(한국의 119에 해당)에 80차례가량 전화를 걸었다. 대개 인종차별적 욕설이나 협박 또는 심각하지는 않은 공격을 당했다는 것이 내용이었다. 차에 페인트로 크게 ‘변태(pervert)’라는 낙서가 그려진 일도 있었다.
 
이웃 주민들의 에브라히미에 대한 집요한 미움에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가 아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근거가 없었다. 그는 매우 조용하고 수줍어하는 성격이었다. 40대였으며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가 집 앞에서 가꾸던 꽃을 이웃 주민들은 아이들을 시켜 밟거나 망쳐버리라고 부추기곤 했고, 그가 사랑하는 고양이 무쉬를 동네 사람들은 발로 찼다.
 
2013년 7월11일 에브라히미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이웃에 사는 리 제임스가 집에 들이닥쳐서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경찰이 도착해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흉흉한 분위기로 에브라히미의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주민들은 에브라히미가 아동성애자이고 아이들의 사진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신고한 것은 에브라히미였지만 경찰은 그를 체포해갔다. 경찰은 그의 집은 물론 카메라와 비디오, 컴퓨터 등을 수색했으나 아무런 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 이튿날 경찰은 그를 풀어주었다. 7월12일, 석방된 에브라히미는 경찰에 그날 하루에만 전화 12통을 걸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경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7월13일에도,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7월14일에도 에브라히미는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제임스는 에브라히미를 언젠가는 죽여버릴 거라고 공공연하게 떠들어댔고, 길에서 마주칠 때면 욕설과 협박을 하곤 했다. 그의 집에 불을 질러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7월13일 밤 제임스는 술에 취한 채 또 그를 찾아와 소리를 질렀다. 에브라히미가 촬영한 동영상에는 제임스가 에브라히미에게 자기 딸들의 사진을 찍지 말라고, 카메라를 내놓으라고, 사진을 삭제하라고 소리 지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때는 이미 경찰이 에브라히미에게 아동성애 관련 혐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를 풀어준 후였다.
 
7월14일, 제임스는 에브라히미의 집에 다시 쳐들어가 그를 때려죽였다. 제임스는 쓰러진 에브라히미의 머리를 계속 발로 짓밟고 쿵쿵 걷어차면서, 어디 맛 좀 보라고 외쳐댔다. 에브라히미는 머리에 입은 상처 때문에 죽었다. 제임스는 친구 스티븐 놀리와 함께 에브라히미를 집 바깥으로 끌어내 시체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후, 자기 집으로 돌아가 동거녀에게 마침내 그를 처리했다고, 일이 제대로 되었다고 말했다.
 
제임스는 에브라히미를 죽이는 것을 정의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로 보았다. 아마 그를 못살게 굴던 이웃 사람들 역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 믿을 만한 근거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경찰의 무혐의 처분은 에브라히미에 대한 의심을 떨치는 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제임스로 하여금 직접 나서서 그를 처리해야만 한다는 결심을 굳히게 한 듯하다. 이 살인으로 제임스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는데, 최소 18년을 복역해야 가석방이 가능하다. 공범인 놀리는 4년형을 선고받았다.
 
의아한 것은 이토록 장기간에 걸친 집요하고도 근거 없는 박해에 대한 경찰과 관련 기관의 반응이다. 이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다. 경찰이나 지역의 공공기관은 그를 피해자가 아니라 계속 귀찮게 구는 말썽꾸러기로 여겼으며, 그의 신고는 주의를 끌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 에브라히미의 호소에 아무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이뤄진 조사에 따르면 그에 대한 이웃들의 괴롭힘은 단순히 차별적 언사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에브라히미를 차로 치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고, 현관문에 돌을 던지기도 했다. 결국 그는 실제로 이웃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무시당했지만 늘 경찰에 신고했다
 
에브라히미의 누나들은 경찰 및 공무원들이 단순히 게으르거나 사태를 간과한 것이 아니라 명백히 차별적이고 악의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난민인 에브라히미를 믿지 않았고, ‘원래 영국인’인 이웃들의 설명을 신뢰했다. 처음 에브라히미에게 영국으로 오라고 권한 것은 그의 누나들이었다. 그는 형제들 중 가장 영리했지만 부모를 돌보느라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다. 이미 영국에 와서 정착해 있던 그의 누나들은 이 점을 매우 미안하게 생각했다. 누나들은 좀 더 가까이 살면서 그를 돌봐주고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기를 바랐다. 에브라히미 역시 영국에서는 더 나은 삶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척추와 무릎에 장애가 있었다. 동생이 마침내 영국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들은 너무나 기뻐서 ‘달에 올라간’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 기쁨은 결국 뼈저린 후회로 바뀌게 되었지만 말이다.
 
누나들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에 힘입어 사건 관계자의 처신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벌어졌다. 중대한 과실을 이유로 경찰 한 명 및 공무원 한 명이 수감되었고, 경찰 두 명이 해고되었다. 그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지 거의 4년이 경과한 후 최근 발표된 경찰감독위원회(IPCC)의 보고서는 경찰 및 공무원들이 에브라히미의 끊임없는 도움 요청을 무시했으며, 이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종에 기반한 차별이었다고 적시했다.
 
수년에 걸쳐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그는 항상 누나들을 안심시키려고 했다. 늘 무시당하면서도, 늘 경찰에 신고를 했고, 늘 경찰이 와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의 누나들은 말했다. 사람들을 지켜주는 것이 경찰의 의무이며 경찰이 사람들을 지켜주는 나라에 와 있다고 그는 믿었다고 한다. 끝내 배신당하고야 만 이 슬픈 믿음을 보면서, 이 나라의 경찰이 지켜주는 사람에 유색인이나 난민도 포함되는 것일까 하고, 역시 유색인인 나는 가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 나라는 공권력의 잘못된 행사를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들여 끈질기게 조사하고 처벌하며 사회적 반성의 기회로 삼기도 하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록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webmaster@sisain.co.kr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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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July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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