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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주 수상 캐슬린 윈, 삶을 내보이다

삶의 주인이 되어
<기사원문 : 토론토 스타, http://www.thestar.com/projects/kathleen_wynne.html>
 
캐슬린 윈(60) 온주 수상은 할아버지 찰스 윈과 할머니 에바 윈 이야기를 하면서 미소 짓는다. 그녀의 파트너인 제인 룬트웨이트는 “찰스와 에바는 케트 당신을 좋아하셨지.”라고 말하며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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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는 1차 세계대전 때 솜 전투 개스전에서 살아남아 의사가 되었으며 에바는 선생님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첫 번째 손녀인 캐슬린 윈을 끔찍이도 사랑하셨다. 그들이 쏟아부어준 무조건적인 사랑은 윈이 받은 인생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이런 사랑은 공인으로서 살아가야만 하는 그녀가 힘들 때에 큰 힘이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은 그녀에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오아시스요 조용히 쉼을 얻는 안식처와 같았다. 그녀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무엇이든지 도전해서 성취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나의 어머니 팻시 오데이는 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늘 웃으신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유모차에 앉아 발판을 발로 들어올리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할아버지 찰스는 나의 어머니에게 ‘팻시야, 얘 좀 봐라 얼마나 밝고 귀여운지 보렴’라고 말하시곤 했다.”
 
어린 시절 사랑을 듬뿍 받은 소중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윈 수상은 37살 되던 해에 레즈비언으로 카밍 아웃 하자 사람들이 갑자기 외면했을 때도 의연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그녀는 카밍 아웃 당시를 회상한다.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 간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똑같은 인간인데 단순히 동성애자라는 것 만으로 차별대우를 받아야만 했다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18년을 기다리다
 
폭설로 백야드가 크리스마스 원더랜드처럼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윈 수상은 정치 이야기를 뺀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생후 7주 된 윈의 손자는 잠 속에서 미소를 짓고 손녀 리비는 깡총거리고 춤을 추며 리빙 룸을 돌아다니고 있어 행복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윈과 룬트웨이트는 2005년에 결혼했지만 “파트너”라는 용어를 더 좋아한다. 룬트웨이트는 “18년 동안 윈을 기다렸다.”고 말문을 떼었다. “그리고 그녀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다시 내게 돌아오기까지 줄곧 기다렸다.”
윈과 룬트웨이트는 1973년에 만났다. 당시 룬트웨이트는 퀸즈대학교 수석 학생처장으로서 학부 학생이던 윈을 학생 감독관으로 채용하기 위한 면접을 했다.
 
“윈이 면접을 보기 위해 방으로 들어오는데 순간, ‘이 여인이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마치 윈의 뒤에서 후광이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인생이 송두리째 한 여인을 향해 몰입되는 걸 느꼈다.” “황금 후광이었다.” 그러자 윈이 “당시에는 지금보다 긴 머리를 나도 하고 있었다.”고 말하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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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트웨이트는 아직도 윈을 케티라고 부른다. 거의 20여 년을 윈을 기다려 온 룬트웨이트는 “케티는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결혼해서 아이를 셋 낳았다. 그리고 둘째 딸 제시카(32)의 자녀인 휴와 리비(올리비아) 그리고 클레어를 귀한 손주로 맞이한다.
윈의 둘째 딸 제시카의 남편 스탄은 티민스의 크리 원주민을 담당하는 온주 경찰관이다. 윈의 다른 자녀는 크리스토퍼(33)와 매기(29)가 있다. 손주 휴가 밤새 잠을 자지 않는 바람에 완전히 녹초가 된 제시카는 낮잠을 자러 2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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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은 1977년에 필 코퍼스웨이트와 결혼해서 네덜란드로 갔다. 네덜란드에서 코퍼스웨이트는 3년 간 회계사로 일했다. 윈은 교육과 연합교회와 가족을 중심으로 여기는 리치몬드 힐 가정에서 성장했다. 전쟁 중 심한 부상을 당한 할아버지 찰스는 윈의 아버지 존과 마찬가지로 가정으로서 인술을 펼쳤다. 윈은 말한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매우 자랑스러워 하셨다.”
 
부계쪽을 들여다보면, 윈의 숙부 할아버지 아더는 1960년대까지 토론토대학교 생화학 과장이었으며, 고모 할머니 마가렛은 데이비스빌 초등학교에서 30년 동안 교사 생활을 했다. 윈의 가계에서는 어느 누구도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낫소에서 성장한 아리따운 윈의 어머니 팻시 오데이는 조실부모하여 친척 집에서 생활했다. 팻시는 소프라노 음악인으로서 2차 세계대전 때 바하마 총독이었던 월리스 심슨과 윈저 공작을 위해 노래를 불렀으며, 캐나다에서는 존 윈과 결혼하고 CBC 와 시사풍자극 ‘봄날은 녹다(Spring Thaw)’에 출연해서 노래를 불렀다.
 
어린 시절
 
윈의 집안에서는 사회정의가 중요한 가치관으로 여겨졌다. 윈은 어렸을 적 의사인 아버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약 대신 수프와 물건을 나눠주고 진료비를 받지 않는 것을 보고 자랐다. 일주일에 한 번 모자를 쓰고 흰 장갑을 낀 채 교회에 가는 것이 중요한 행사 중의 하나였다. 윈의 부모는 주민이 16,000명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에서 컬링 게임을 하며 주민들과 친교를 나누었다.
윈은 말한다. “풍족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편안하고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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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 후 윈은 할머니 에바 집에서 함께 살기 위해 1년을 쉬고 서점, Smith’s Books에서 일한다. 퀸즈대학교를 마치고 난 뒤 그녀는 토론토대학교에서 사회언어학 석사과정을 밟으며, 콘스탄스 레이크 원주민 보호구역의 어린이 영어를 연구하였다. 그러나 결혼은 그녀의 계획에 노선 변경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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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불어를 잘 한다. 독일어와 네덜란드어는 조금 할 줄 안다. 그녀의 할머니 에바는 그녀와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 에바는 해외 원조 봉사에 관여했으며 중국을 돕는 노만 베튠의 봉사활동에도 깊히 관여를 했다. 윈은 에바를 조금 닮았다. 흑백사진에 나오는, 부드러운 얼굴과 고운 자태 그리고 곱슬머리를 한 귀여운 윈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윈의 할아버지 윌리 왓슨은 1860년대에 온타리오 주 남서부 지역에 이민왔다. 105세까지 산 왓슨은 철저한 금주주의자였다. 그리고 충실한 장로교 신자로서 1925년 연합교회 설립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특이한 관계
 
라운트웨이트는 “윈이 나를 부른 운명의 토요일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다.”고 말했다. 바로 그 운명의 토요일에 윈은 룬트웨이트에게 전화를 걸어 “내게 와서 나와 함께 뭔가를 이룩하자.”고 말했다.
 
윈과 코퍼스웨이트는 1977년부터 1991년까지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그리고 지금은 친구로 남아서 1991년에는 다른 커플과 함께 카티지를 사기도 했다. 한때는 아이들을 포함해 코퍼스웨이트, 룬트웨이트까지 모두 한 집에서 산 적이 있다. 지금은 코퍼스웨이트는 가까운 곳으로 이사 나갔지만 이들은 아직도 가족 만찬 행사를 성대하게 가진다.
 
윈은 “아이들에게 혼란과 정서적 불안정이 없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아이들의 장래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룬트웨이트와 나는 공동으로 부모역할을 다하기로 했다.”고 말해서 자녀교육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엿볼 수 있다.
 
모두의 발전을 향해
 
“치열하게 노력한 4년이었다.”고 룬트웨이트는 말한다. 룬트웨이트는 MBA이자 경영서비스(executive services)를 제공하는 기업의 회장이다. 건축가이자 룬트웨이트의 어머니인 쉘라는 애당초 이 결혼을 탐탁해하지 않았다. “뭐라고 이름붙여도 결혼이라고 보이지 않는다.”며 동성애를 바라보는 주위의 눈을 의식했다. 하지만 룬트웨이트는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결혼이 아니라고 말씀하셔도 결혼처럼 보이고, 들리고, 결혼식 웨딩드레스를 입을 것이다.”고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이제 우리가 함께 한지 어언 30년이 되었다. 이제는 왜 이성과 결혼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건 넌센스다. 윈에 의하면 룬트웨이트의 어머니는 주의의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들과 증인들에 감동을 받아 이들의 결혼을 인정했다.
 
윈은 말한다.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사회적인 지원과 배려가 다가온 것에 대해 감사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중의 하나라고 느낀다.” 윈은 파트너 룬트웨이트의 헌신에 모든 공을 돌리며 그녀의 정치 인생에 있어 룬트웨이트의 역할을 “시금석(touchstone)”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룬트웨이트가 없었다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지금의 정치 경력을 쌓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룬트웨이트가 싸인해서 윈에게 선물로 준 1973년판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라는 작은 책은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 때 두 사람이 함께 읽으며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원문 기사 : 토론토 스타, http://www.thestar.com/projects/kathleen_wynne.html>
(NATIONAL AFFAIRS WRITER : LINDA DIEBEL, PHOTOGRAPHER : CHRIS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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