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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동지의 슬픔 (북한사회 이야기)

최재호는 40년 세월을 당 간부로 사업한 사람이었다. 20대 초반에 “공산대학”을 졸업하고 당 간부로 임명받은 후 40대 초반부터는 당위원회 당원등록과장으로 승진하여 명예도 조금씩 맛보며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왔다. 그는 항상 자신을 자부하며 살았다. 노동당 세월이여서 당 간부 직함을 가지고 사느라면 명예도 물질도 저절로 생기군 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때마다 만족감을 느끼군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자주하군 했다. 그 때(90년대 까지)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당간부들에게 충성했고 그것이 통하지 않거나 인정받지 못하면 각종 뇌물을 바치군 했었다. 여자들은 성을 서슴없이 바치기도 했다. 그 당시 최재호도 뇌물을 엄청 많이 받아먹곤 했는데 뇌물을 받은 최재호가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뇌물을 바친 사람들이 최재호가 뇌물을 받아주는 것에 감격하여 허리를 굽실거리곤 했었다.

 

그렇게 살아온 최재호는 요즈음에는 “텅빈 가슴”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고난의 행군” 시기와 그 후 십 년 사이에 급격히 변해 당원등록과장인 최재호를 마당 구석의 닳아빠진 도끼 모태를 보듯 덤덤히, 혹은 홍수에 떠가다가 강기슭에 걸린 꿰진 바지 쳐다보듯 사팔뜨기 눈으로 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최재호는 요즘 걸핏하면 ‘지금 놈들은 차 영감 같은 놈들’이라고 불만에 목 메이는 욕설을 입에 달고 다녔다.

 

최재호가 반당분자 같은 차 영감 때문에 격분했던 때가 불과 20년 전의 일인데 불과 20년 사이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차 영감처럼 되었다는 것은 최재호에게 있어서 도대체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차 영감으로 말하면 정치범수용소에서 10년 넘게 고생하고 나온 후 군 식료공장에 경비원으로 배치 받아 하루하루 그럭저럭 살아가는 영감이었다. 상통이 돼지가 먹다가 두엄터에 버린 쭈그러진 호박처럼 볼품없는 영감이었지만 보안서의 주민등록 문건을 들춰보면 그는 남노당 출신으로 왕년에는 중앙에서 큰 간부까지 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하도 많아 최재호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어느 날 중앙당으로부터 차 영감을 명예회복시키고 노동당에도 복당시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공교롭게도 중앙당에서 그런 지시가 떨어진 다음날부터 차 영감은 집에서 앓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재호는 복당시키는 당증까지 만들어 가지고 다음 날 군당조직비서와 함께 차 영감의 집을 찾아갔는데.

 

그 날 최재호는 엄청 격분했다. 최재호와 조직비서가 차 영감을 명예회복시키라는 중앙당의 지시를 전달하고 ‘영광스러운’ 노동당 당증을 차 영감에게 수여했는데  덤덤히 당증을 받아들며 차 영감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까짓것, 주면 받지요” 당증을 수여하고 돌아오며 최재호는 성이 나서 차 영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망할 영감, 남들은 입당하지 못해 아글타글하고 또 입당을 시키면 눈물을 뚝뚝 떨구며 감지덕지 하는데, 뭐? 까짓것 주면 받는다고? 최재호는 화가 나서 군당 조직비서에게 차 영감을 다시 혁명화시켜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직비서는 중앙당의 지시라는 말로 최재호의 의견을 묵살해버렸다.

 

최재호가 차 영감 때문에 격분했던 때가 1993년이었다. 그런데 불과 20년 사이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차 영감처럼 되어버린 것이었다. 아니, 그래도 지금 사람들보다 차 영감은 괜찮은 축이었다. 차 영감은 ‘까짓것 주면 받지요’라고 말했지만 지금 놈들은 당원이 되는 것이 필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허지만 요즈음도 최재호는 자신의 설자리를 지키기 위란 열성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요즈음은 당간부라 할지라도 게으르면 항상 텅빈 주머니를 차고 살아야 했다. 그는 당을 질적으로 강화한다는 중앙의 방침을 철저히 지켜 사람들을 입당시키는 문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대신 이미 전에 입당한 사람들이 당 생활을 게을리 하거나 당 생활에 참가하지 않는 현상들을 찾아내어 사정없이 처벌하는 방향에 자신의 “설 자리”를 잡았다.

 

요즈음에는 눈만 똑바로 뜨고 있으면 사정없이 처벌할 대상들은 얼마든지 잡아낼 수 있었다. 먹고 살아가는 데에만 급급한 요즈음의 많은 사람들은 당 생활에서 누락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6개월, 심지어 1년 넘게 당 회의 한 번 참가하지 않는데 이것은 엄연한 처벌대상이었다.

 

당 내부규정에도 6개월 이상 당 회의에 참가하지 않으면 자동 출당시킨다는 원칙이 있었다. 최재호는 자신의 손으로 한 달 사이에 다섯명을 명을 출당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여러 명을 색출해서 처벌도 주고 출당도 시켰지만 좀처럼 최재호에게 만족감은 생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처벌을 주고 출당까지 시켜도 몇 년 전처럼 울고불고 하거나 자책을 하지 않았다. 어떤 놈들은 아쉬울 것이 없다는 듯, 뉘우치는 것 같은 표정조차 짓지 않았다. 마치도 이미 전에 예견했거나 각오하고 있었다는 듯 처연한 표정을 지어보이거나 불만스럽다는 듯 투덜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어떤 놈들은 눈살을 꼿꼿이 세우고 접어들기도 했다. 당신 말처럼 죽물도 안 나오는 공장에 꼬박꼬박 출근하다가 굶어죽어야 열성당원인가. 내 가족이 굶어죽으면 당신이 책임질 수 있는가. 그러면 최재호는 더욱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거나 무자비하게 출당시켜버렸다.

 

나쁜 놈들, 공화국 최고 조직인 당 기관을 어떻게 보고 함부로 대꾸질이야. 어떤 때는 화가 나서 대꾸질을 하는 놈들과 멱살잡이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상심해서 줄담배질을 하기도 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당원등록과장의 권세가 대단했는데. 그때가 참 좋았는데.

 

지금 놈들은 당 위원회 과장을 장마당의 잎담배 장사꾼 영감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최재호는 요즈음 걸핏하면 이런 말을 하군 했다. “에이 씨발, 이제는 당위원회 과장도 못해먹을 짓이다”

 

당간부의 권위로 설자리를 만들고 그 속에서 이익을 챙기기 위한 최재호의 궁리도 그렇게 번번히 물거품이 되어 사기를 잃어가던 어느 날, 그는 길가에서 15년 전에 자기가 입당시킨 정옥을 만났다. 그는 오랜만에 정옥이한데서 반가운 얘기를 한마디 들을 수 있었다.

“과장 동지, 제 동생이 작년에 군대에서 제대했는데 1년 동안 당 생활에 참가하지 않아 처벌을 받게 됐어요. 과장 동지가 좀 도와주시면”

 

최재호는 흔연히 물었다.

“동생이 어느 공장에 다니는데?”

“가구공장에 다녀요”

“알았어. 저녁에 내가 집에 가지. 가만, 너 지금 어느 동네에서 살던가?”

“중학교 앞 동네요. 큰 길로부터 세 번째 집”

 

정옥의 뜻은 저녁에 집에 오시면 음식을 대접해드리겠으니 그것을 먹고 자기 동생의 일을 무난하게 처리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저녁’을 합의하고 헤어지는 순간 최재호는 또 실수했다.

 

“저녁에 가면 소고기나 돼지고기 같은 것도 있겠지?”

 

넌지시 그 말을 흘리고 나서 최재호는 입술을 깨물며 후회했다. 명색이 당위원회 과장동지라는 사람이 “소고기나 돼지고기 같은 것도 있어?”라는 비루하기 짝이 없는 말을 보잘 것 없는 아낙네에게 흘려놓다니. 그는 비참해진 자신의 처지를 절감하며 굶주림 앞에 나약해진 자신을 타매했다. 사람도 열흘을 굶으면 개처럼 비루해진다는 처량한 생각도 해봤다.

 

우울한 기분에 젖어 속으로 괜히 정옥이를 욕하기도 했다. 망할 년, 느닷없이 나타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다니. 15년 전 정옥이를 입당시킬 때 그가 최재호에게 “순정”을 바친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혹시 정옥이는 15년 전에 바친 “순정”의 효과가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서슴없이 또 부탁하는 것은 아닐까? 재호는 머리를 저었다. 자신은 정옥에게 빛진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두번이든지 세번이든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 농락(재호 자신도 과거 정옥이와의 관계를 사랑이 아니라 농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의 대가로 정옥을 노동당원으로 만들어 주었었다. 후에는 정옥의 부탁을 받고 그의 애인도 입당시켜주었었다.
… … … …

 

그 날 저녁 최재호는 정옥의 집으로 갔다. 정옥은 2년 전에 남편을 여의고 과부로 살고 있었다. 그의 남편은 감옥에 가서 죽었다. 최재호는 정옥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그의 운명도 참 기구하다는 생각을 해보군 했다. 사람들은 흔히 잘생긴 여자들이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옥은 처녀 때는 뭇 남자들의 시선을 받을 만치 예뻤지만 그 후에는 거꾸로 건달 같은 놈에게 시집을 가서 마음고생을 하면서 살아야 했다.

 

정옥의 죽은 남편은 인민군대 중대장까지 하다가 제대(전역)한 사람이었다. 그는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중국으로 도망쳤다가 잡혀와 감옥에서 죽었다. 그는 전에 아내인 정옥과 걸핏하면 다투었는데 그때마다 그가 했다는 말은 지금도 사람들 속에 어록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야, 내가 너하고 밥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며 사니까, 너는 내가 네 친구 같아 보이냐?” 물론 그 말은 총각 때 인민군대 중대장까지 한 자신을 몰라보고 꼬박꼬박 대꾸질을 하는 정옥에게 화가 나서 한 말이었지만 사람들 속에서는 그 말이 후에 우스개가 되어 돌아갔다.

 

최재호가 정옥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어스름이 깃드는 저녁이었다. 정옥의 집에는 먼저 그의 남동생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처녀 때의 정옥이처럼 부드러운 입가에 눈 꼬리가 약간 쳐들린, 만만치 않은 인상을 주는 30대 초반의 잘생긴 얼굴이었다. 한마디로 무척 똑똑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정옥은 최재호에게 남동생을 소개하고 곧 술상을 차렸다.

그런데 정옥이 차리는 술상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최재호는 느닷없이 속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술상이라는 것이 조밥 한 그릇과 김치 한 접시, 돼지고기 쪼각(조각)을 서너 점 띄운 두부국이 전부였던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또 정옥을 욕했다. 망할 년, 이것이 당위원회 과장을 대하는 태도란 말인가.

 

아마 20전이였으면 이런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었다. 아마 이런 초라한 술상을 차리고 당위원회 과장동지를 초대하면 그는 틀림없이 바보취급을 받거나 불손으로 몰리울 것이었다. 최재호는 다시 한 번 무정해진 세월을 한탄했다. 당 간부도 이제는 헌 바지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느낌에 가벼운 한숨을 쉬기도 했다.

 

하지만 당 간부들은 불손 앞에서 못 참는 법. 최재호는 고까운 속을 쓰다듬듯 담배를 한 대 붙여 물고 입을 열었다. “너 당 생활에 몇 개월 빠졌어?” 정옥의 동생은 최재호의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1년 2개월을 빠졌습니다” 주눅이 전혀 들지 않은 정옥이 동생의 대답에 최재호의 기분은 더욱 언짢아졌다.

 

10년 전 같으면 머리를 푹 숙이고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사실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1년 2개월 빠졌습니다”하고 떠듬떠듬 대답했을 것이었다. 마침내 최재호는 자기의 인격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은 곧 당 간부의 권세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최재호는 목소리를 묵직하게 가다듬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요즘 말이야 당원들이 말썽이야. 그래서 중앙당에서도 지금은 당을 양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지시를 내려 보내고 있어. 처벌 줄 사람들은 처벌을 주고 출당시킬 사람들은 출당을 시키고. 그런데 1년 2개월이나 당 회의에 빠졌다니. 그게 간단히 끝날 수 있을까?”

 

그만에야 정옥의 동생은 마지못해 조금 주눅이드는 듯 했다. “사실 먹고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장사도 하고 소토지 농사도 하면서 살다보니 당 회의에 많이 빠졌습니다”

최재호는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계속했는데 그 이야기의 방향은 습관대로 상대의 안주머니를 겨냥한, 자기의 이익을 만들기 위한 상투적인 것이었다.

 

“요사이 골치 아파 죽겠어. 상급 당에서는 규율을 강화하라는데 당원들은 말을 안 듣지. 그러다가도 출당 받게 되면 나를 찾아와 울며불며 사정하고. 어떤 사람들은 염소를 한 마리 잡아가지고 와서 사정하기도 하고. 나도 인정이 있는 사람이어서 사정하면 들어주느라고 하지만 그것도 쉬운 것은 아니야”

 

다음 최재호는 슬쩍 ‘자기 말’을 덧붙였다. “지금은 당 간부들에게도 뇌물을 바쳐야만 통할 수 있어. 공장 기업소 농장들의 당 비서들도 그저 먹여줘야 입을 닫고 있어” 최재호는 이쯤 되면 상대에게서 반응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20년 전에는 이쯤 되면 “과장 동지, 그까짓 염소 한 마리가 뭡니까” 혹은 “저는 과장 동지만 믿겠습니다”라고 은근한 추파를 던지며 뇌물보따리를 내놓았을 것이었다.

 

정옥의 동생은 머리가 복잡한 듯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잠시 침묵하다가 그는 입을 열었는데 그것은 최재호가 기절초풍할 말이었다. “과장 동지, 이 기회에 차라리 나를 출당시켜 주시우”

 

최재호는 입을 쩍 벌린 채 놀란 눈길로 정옥이 동생을 쳐다봤다. 자기도 모르게 말까지 떠듬거렸다. “그 그건 왜?” 정옥이 동생은 화가 조금 올라있었다. 그는 당당하다는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까짓것 출당을 주면 출당을 받지요”

 

화가 나는듯 “까짓것”이라고 퉁명스러운 말을 내뱉는 정옥이 동생의 눈 꼬리가 약간 쳐들린, 그 만만치 않은 눈길을 노려보던 최재호는 문득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미묘한 기분이라는 것이 지난시기 어디선가 저런 눈길을 많이 보았다는 기억이 불시에 떠오른 것이었다.

 

최재호는 부지런히 머릿속을 헤집으며 어디서 저런 눈길을 보았던지를 기억해보려 했지만 도무지, 안타깝게도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안타깝게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데 정옥이 동생은 여전히 화가 나면 눈 꼬리가 쳐들리는, 상대의 속심을 꿰뚫어 보는듯한 만만치 않은 시선으로 최재호를 지켜보며 씨까쓸렀다.

 

“지금 사람들 참 야단났어요. 숱한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며 죽어 가는데 간부들은 자기 이속(잇속) 챙기기에만 바빠 돌아가고. 그런 사람들이 간부질을 하니 나라가 이 꼴일수밖에” 이어 정옥의 동생은 마치 어떤 결심이라도 한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출당시켜 주시우. 나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당 생활도 제대로 할 자신이 없어요. 차라리 출당을 받으면..” 차마 뒷말은 입에 담기가 싫은 듯 정옥의 동생은 입을 닫아버렸다. 그러나 최재호는 그의 뒷말이 어떤 것인지 능히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아마, 틀림없이 뒷말은 “차라리 출당을 당하면 자유롭고 살기가 편하다”는 이야기일 것이었다.

 

최재호도 화가 꼭뒤까지 올랐다. 건방진 자식, 내가 누군지 알고 함부로. 당 간부를 함부로 욕보이는 이놈을 어떻게 하면 혼쌀 낸다? 그러나 최재호는 더 이상 끼워들 틈이 없었다.

방 아랫목에 앉아있던 정옥이 발끈하여 제 동생에게 화를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얘, 너 지금 제정신이냐? 너 그러다가 진짜 출당을 주면 어쩌자고 그러냐” 정옥의 동생은 코웃음을 쳤다. “누이, 근심 마오. 출당을 당하면 당했지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이렇게 술상까지 차려놓고 그러우”

 

마침내 화가 꼭뒤가지 치민 최재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야, 난 간다” 그는 이렇게 외마디 소리를 내뱉고 씨엉씨엉 방문을 열고 토방으로 나갔다. 정옥이 눈물을 흘리며 만류했지만 그것도 뿌리쳤다. 토방에서 발을 더듬어 신발을 꿰신은 그는 마당을 나서며 침을 퉤하고 뱉었다.

 

최재호는 어두운 밤길을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오며 지금 놈들을 욕했다. 나쁜 놈들, 당 간부를 괄시하다니. 노동당 세월에 노동당 간부를 괄시하면 그것은 말기증상이다. 두고 봐라 이놈들, 당 간부를 괄세하면 세월은 망한다.

 

이놈들, 세월이 망해야 그 다음에 울고불고. 여기에서 그의 분노에 찬 머릿속 욕설은 주춤거렸다. 이 세월이 망하면 울고불고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떠오른 것이었다. 그 생각과 함께 또 다른 기억도 떠올랐다.

 

화가 나면 눈 꼬리가 쳐들리는 정옥이 동생의 만만치 않은 눈길이 어데서 봤던지 기억나지 않아 전전긍긍했는데 불시에 그 기억도 떠오른 것이었다. 화가 나면 눈 꼬리가 쳐들리는 만만치 않은 눈길은 최재호 자신의 20년 전 눈 모습이었다.

 

20년 전 최재호 자신이 그랬었다. 눈 꼬리가 쳐들린, 만만치 않은 눈길을 곤두세우면 사람들은 그저 굽실거리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보잘 것 없는 젊은 놈들이 건방지게 눈 꼬리를 쳐들고 당 간부들까지 째려보고 있었다. 참으로 기분 나쁜 일이었다.

 

집에 돌아온 최재호는 또 한 번 화가 났다. 정옥의 집에서 화가 나서 나올 때 토방에서 발을 더듬어 신발을 꿰신고 나왔는데 집에 와보니 신발은 서로 다른 짝이었다.

한 짝은 최재호 자신의 구두, 다른 한 짝은 정옥이 동생의 것으로 짐작되는 중국 구두였다.

 

다음 날 최재호는 길가에서 정옥을 만나 이야기했다. “어제 저녁에 내가 너희 집에 갔다가 신발을 바꾸어 신고 왔는데 말이야. 신발은 돌려줘야지” 정옥은 심드렁히 대꾸했다. “제 동생 신발 한 짝도 과장 동지가 신고 갔어요. 그래서 제 동생이 남아있던 과장 동지의 신발을 신고 제 집에 갔는데”

 

최재호는 속이 울컥했다. 망할 년, 내가 동생의 신발을 먼저 돌려줘야 동생이 신고 간 신발 한 짝도 마저 돌려주겠다는 것이냐? 요즈음에 이래저래 기분 없는 일만 겹친다는 생각에 최재호는 한숨을 쉬며 이맛살을 찡그렸다.

 

최재호는 정옥이 아니면 그의 동생이 다음날에는 신발 한 짝을 가져오리라고 생각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신발은 가져오지 않았다.

 

두 달 후 최재호는 다시 길가에서 만난 정옥에게 말했다. “여, 거 신발 한 짝을 안 가져와?” 정옥은 시끄럽다는 듯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 “어머, 그 신발 한 짝은 제 동생이 버렸대요. 새 신발을 사 신으면서”

 

지금도 최재호의 집에는 짝을 잃은 신발 한 짝이 그대로 있다. 며칠 전에는 마누라가 토방에서 버림받는 구두 한 짝이 안쓰러운 듯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당 간부 신세도 헌 신발 짝이 되고 말았수. 여보, 저 신발은 이젠 버리시우”

 

그 날 최재호는 마누라를 흘겨보며 이렇게 말했다.
“놔둬라. 그 신발은 이 다음에 박물관에 보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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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잎사귀(탈북수기) [8]

November 19, 2013 • Article, Column, World:

8. 심양시에서   내가 흑룡강성의 오상시에서 선화 할머니의 딸을 따라 심양시로 갔을 때는 2003년 3월이었다. 선화 할머니의 딸은 심양시에서 조선족들이 모여사는 서탑가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를 이모라고 불렀다.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