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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목숨값 9000만원? 의료보험 없인 허당인 나라, 미국

미국 소도시에 사는 웨이트리스 앨리스(제시카 비엘)는 남자친구의 청혼을 받던 날, 머리에 못이 박히는 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 갑니다. 그러나 의사는 “당신에겐 의료보험이 없다”며 막말을 퍼붓고 수술을 중단해버리죠. 앨리스는 분노 조절 장애를 앓고 말투까지 어눌해진 탓에 파혼당합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요.

절망한 그녀, TV를 보다 지역구 의원 하워드(제이크 질렌할)를 보고선 무릎을 칩니다. ‘긴급 의료보험법’을 통과시켜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그를 찾아가기로 한 앨리스. 머리에 못이 박힌 채 정치인을 찾아간 그의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다소 황당한 이 이야기, 할리우드의 유명 감독 데이비드 O 러셀이 만든 영화 ‘엑시덴탈 러브’(2015)의 내용입니다. 로맨틱코미디의 틀을 빌려 미국 의료체계를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죠.

여기서 퀴즈 하나.

Q : 의료보험 없는 앨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병원 치료를 받는다면 얼마를 내야 할까요?
A : 무려 7만 5000달러! 우리 돈으로 약 9000만원을 내야 합니다.

최근 미국 CNBC 방송은 미국에서 의료보험 미가입자가 코로나19 치료를 받을 경우 병원비가 4만 2500달러(약 5200만원)에서 최대 7만 5000달러까지 청구될 수 있다고 보도했죠.

어마어마하죠?
그렇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이 전염병 앞에서 연일 무너져내리고 있습니다. 확진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데다 허점 많은 의료체계의 민낯이 전 세계에 드러났거든요. 국가가 국민, 특히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방식에서 미국의 공공 의료서비스는 낙제점에 가까운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임주리의 [영화로운 세계] 시즌2 일곱 번째 이야기입니다.

공공 의료서비스는 한 국가의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잣대입니다. 대부분 선진국은 이를 잘 갖추고 있죠. 아프면 누구나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게 하거나 국가주도형 의료보험제도를 운용하는 식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건강보험제도가 있고요. 어떤 제도든 완벽하진 않지만, 전염병 등 심각한 보건 위기가 닥쳤을 때 공공 의료서비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죠.

그런데 미국은 좀 특이합니다.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보편적인 공공 의료서비스가 없습니다. 물론 저소득자를 위한 의료서비스 ‘메디케이드’와 65세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메디케어’가 있습니다만, 대부분 미국인은 민간 보험을 들어야 하죠. 메디케이드의 혜택을 받을 정도로 가난하진 않지만, 보험에 들 여유는 없다면? 각자도생. 운이 좋기를 바라며 그냥 살아갑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미국 의료비, 엄청 비싸거든요. 출산하는 데 수천만 원이 듭니다. 아프면 파산하는 경우가 태반이죠. 그러니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가서 치료받는 사람들까지 생겨났습니다. 보험에 들었다고 안심할 게 아닙니다. 이윤 추구가 목적인 민간 보험사들은 최대한 보험금을 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거든요. 마이클 무어 감독이 2007년 내놓은 다큐멘터리 ‘식코’는 바로 이 점을 꼬집은 작품이죠.

게다가 보험 체계는 얼마나 복잡한지요. 크게 ▶보험사와 계약한 의사를 만나고 역시 계약한 병원에 가야만 보험비를 받을 수 있는 상품(HMO) ▶자유롭게 병원을 고를 수 있지만 그만큼 비싼 상품(PPO)으로 나뉘는데요. HMO에 가입했을 경우, 응급 상황에서 주변에 내 보험사랑 계약한 병원이 없다면 큰일 나는 겁니다. ‘식코’에는 보험에 가입했는데도 바로 이런 상황을 맞이해 딸을 잃은 여성이 등장하죠.

문제가 너무 심각해지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재임 2009~2016년)이 결단을 내립니다. ‘오바마케어’(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보험법ㆍPPACA)가 바로 그것이죠. 드디어 전 국민 대상 의료보험을 도입했느냐고요? 아닙니다. 그건 미국에서 너무 ‘급진적’인 안이라 받아들여지지 않을 게 뻔했거든요.

오바마는 다른 방식을 택합니다. 모든 국민의 의료보험(민간) 가입을 의무화한 거죠. 가입하지 않을 시 벌금을 부과하는 대신 소득이 적은 이들에겐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메디케이드ㆍ메디케어 혜택의 범위를 확대하고, 직원이 50명 이상인데 직장 보험을 안 들어주는 고용주에겐 불이익을 줬죠. 고소득자에겐 세금을 더 걷고요.

오바마케어는 온갖 진통을 거쳐 2014년 1월부터 시행됩니다. 말 많고 탈 많았지만 어찌 됐든 보험 가입률은 쭉쭉 상승했죠. 2010년 5000만명 가까이 됐던 보험 미가입자는 2016년 2700만명, 2017년 2560만명으로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2017년. 두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며 상황이 바뀝니다.

오바마케어를 주야장천 비난했던 그는 이를 아예 폐지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죠. 그러자 트럼프는 2017년 10월, 저소득층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시키는 행정명령을 내립니다. 2018년에는 오바마케어의 핵심인 ‘의무가입조항’을 삭제하죠. 그러자 보험 미가입자가 다시 늘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미가입자는 2750만명으로 증가했죠.

상황이 또다시 반전된 건 2018년 11월입니다. 중간선거(상ㆍ하원 의원 선출)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차지했거든요. 오바마케어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만든 것이니, 이를 폐지하기는 힘들게 된 거죠. 그러나 여전히 공화당 진영에선 이 법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각 주(州)에서 공화당 주지사 등이 나서 위헌 소송도 내고 있고요.

현재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미국 인구는 약 3억 3100만명인데 그중 8.5%가 어떤 의료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불법체류자까지 포함하면 더욱 많겠죠.

더욱 우려되는 건 앞으로입니다. 미국 보험 가입자의 55%가 직장을 통해 보험에 가입돼 있는데요. 코로나19 팬더믹으로 실직자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거든요. 이미 약 2200만명이 실직했습니다. 직장을 잃으면? 보험도 잃는 겁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200만~3500만명이 앞으로 직장 의료보험을 잃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럼 5000만명이 보험 없이 살아가던 오바마케어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거죠.

미국 정부는 바이러스 검사 비용을 지원하는 등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WP)는 것이 미 언론의 평가입니다. 전문가들은 보험 미가입자의 코로나19 관련 의료비용이 최대 418억 달러(약 51조 4000억원)가 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고요.

그렇기에 올해 11월 열릴 대통령 선거에서 의료체계 개선은 뜨거운 이슈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벌써 이 점을 집중 공략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도 조급해졌습니다.

영화 ‘엑시덴탈 러브’의 앨리스는 각고의 노력 끝에 해피엔딩을 맞이합니다.
현실의 수많은 앨리스들은 각자에게 박힌 ‘못’을 빼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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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April 21, 2020

Filled Unde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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