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 스캔들’ 고발자는 영웅일까 단순절도범일까?

‘지금으로부터 7년전인 2008년 12월22일 스위스 경찰은 제네바에서 37살의 컴퓨터 전문가를 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붙잡아 몇시간에 걸쳐 심문했다. 경찰은 그에게 다음날 아침 경찰에 출두하라고 명령하고 풀어줬다. 하지만 이 남성은 그 즉시 차량을 빌려, 아내와 두 딸을 태우고 프랑스 국경으로 가는 최단거리 코스를 밟았다. 프랑스 남부에 도착한 그는 스위스경찰에 전화를 걸어 크리스마스를 프랑스에서 보낼 것이라고 둘러댄 뒤 영영 스위스로 돌아오지 않았다’
 
세계 굴지 은행 HSBC가 전세계 거물급 고객의 대규모 탈세를 도왔다며 12만 비밀계좌 정보를 낱낱이 폭로한 에르베 팔치아니<43ㆍ사진>가 스위스 경찰을 따돌린 얘기다.
 
HSBC의 일개 IT직원이던 그는 2007년 회사를 퇴사하며 디스크 5장에 방대한 양의 고객정보를 담아 ‘튀었다’.
 
이 디스크에는 HSBC PB(개인자산관리)사업부가 203개국 개인과 법인 명의로 개설된 12만 계좌를 통해 1000억 달러(약 109조5000억원)에 이르는 자산을 관리하며 탈세를 도운 내용이 담겼다.
 
금융계의 대형 스캔들로 번진 이번 폭로에 팔치아니에게 금융계의 ‘에드워드 스노든’, 부자들을 떨게 만든 ‘대도’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목적으로 고객 정보를 훔친 계산적인 절도범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동시에 나온다.
 
영국 BBC, AFP 등에 따르면 팔치아니의 이전의 삶은 순탄한 편이었다. 모나코에서 나고 자란 그는 1990년대 모나코 카지노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HSBC IT직원으로 입사한 건 2000년이다. 이후 2006년 제네바 PB사업부로 발령나면서 삶의 커다란 전기를 맞았다. 2006~2007년 사이 그는 각국 왕실, 기업가, 배우, 스포츠 스타 등 개인 30만명을 포함한 12만명 고객 정보를 수집했다. 2008년에 그는 이렇게 모은 정보를 갖고 HSBC 여성 동료이던 조지나 미하일과 함께 레바논으로 향했다. 정보를 돈받고 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레바논에 있는 은행들은 이 계좌 정보에 관심이 없었고 외려 한 은행가가 스위스 측에 팔치아니의 행각을 제보했다.
 
훗날 미하일은 팔치아니와는 연인 사이였으며, 팔치아니는 처음부터 민감한 고객 정보를 빼내 팔 요량으로 HSBC에 입사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팔치아니는 미하일은 단순한 동료였을 뿐이며 레바논 은행을 찾은 것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요원이라고 주장한 남자들이 HSBC 고객 정보를 레바논에 넘겨, 테러활동을 위한 비밀 자금으로 사용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권유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이중국적자인 팔치아니는 2008년 프랑스로 피신한 다음 디스크 5장을 프랑스 당국에 넘겼다. 프랑스 당국은 자국 국민에 대한 망명보호법 때문에 그의 신병을 스위스에 넘길 수 없었다. 2012년에는 스페인에서 5개월 가량 구금되기도 했던 그는 스페인 당국이 스위스에 그의 신병 인도를 거부함으로써 체포를 면했다.
 
팔치아니가 제공한 계좌 명단을 바탕으로, 당시 재무장관이던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주도적으로 탈세 혐의자를 추렸고, 이 명단은 ‘라가르드 리스트’로 불렸다.
 
요르단 국왕 압둘라2세, 바레인 왕자 살만 빈 하마다 알 칼리파, 오만 국왕 까부스 빈 알사이드 등 왕실과 중국 리펑 전 총리 딸 리샤오린, 이탈리아 패션사업가 발렌티노 가라바니 등이 ‘라가르드 리스트’에 포함됐다.
 
프랑스 반탈세그룹인 ‘안티커’의 에릭 알트 부대표는 “그는 용감하다. 그의 동기가 뭐든 그가 한 일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현재 팔치아니는 프랑스 세무 당국에 IT 기술을 자문해주고 자문료로 한달 3500유로(433만원)를 받고 생활하고 있다. 9일 스위스 공영방송 RTS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과 같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금융 지원 등 보호책을 강화해야한다”고 말했다.
 
[기사출처 : 헤럴드 경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16&aid=00006347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