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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세계 부호 워런 버핏 2 – 40대 억만장자가 연봉 5만달러로 생활

85만달러짜리 중고 자가용비행기 ‘유일한 사치품’
“그가 사는 주식 노려라” 49살부터 명성
87년 증시폭락 때 ‘마이 웨이’ 요지부동
“하이텍사업 이해 못해” 거품 정확히 예견
 
버핏투자회사(BPL: Buffett Partnership Limited)를 설립한지 10년 되는 1966년 이후 버핏은 현금투자를 더 이상 받지 않았다. 그러나 주식, 채권 같은 유가증권이나 부동산 사업체 등을 포함한 투자는 배제하지 않았다. 버핏은 처음으로 볼티모어에서 백화점을 운영하는 개인사업체를 인수했다. BPL 자산은 10년간 11배나 성장, 약 4,400만 달러가 되었고 버핏 부부 지분은 685만 달러가 되었다. 같은 기간 다우지수는 123% 성장했다.
버핏은 67년 내셔널보험(National Indemnity)사의 지분 전체를 샀다. 68년 월남전쟁이 본격화, 주식시장이 과열되자 버핏은 59%의 수익률을 올렸고 BPL 자산은 1억 달러로 불어났다. 69년 5월 그는 투자기회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BPL의 버크셔해서웨이(BH)사와 디버서파이드(Diversified Retailing)사의 주식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처분하고 BPL을 청산했다. 그는 유한투자가들에게 BH사 주식을 배당하고 그의 미래에 대한 소신을 알리지 않았다. 버핏은 자신이 갖고 있던 29%의 BH사 주식을 고수했다.
 
70년 40살의 버핏은 BH사 회장 신분으로 주주들에게 연차 투자실적보고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은행 및 보험사업에서 47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지만 직물사업은 4만5천 달러에 그쳤다. 71년 캘리포니아에 고급 초컬릿을 공급하는 시스캔디(Sees Candy)사를 2,500만 달러에 매입했고 73년에는 유력지인 워싱턴포스트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65년부터 75년까지 BH사 장부가치는 주당 20달러에서 95달러로 올랐고 버핏은 BH 주식 46%를 소유하게 됐다.
 
77년 버팔로이브닝뉴스사를 3,250만 달러에 샀다. 같은 해 부인 스잔이 별거를 요구하며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스잔은 가끔 가수로 카바레 무대에 섰는데 우연히 오마하극장에서 공연을 가진 닐 세다카의 권유로 본격 가수의 길을 걷겠다며 떠나자 온순한 성격의 버핏은 큰 충격을 받았다. 스잔은 별거 후에도 버핏과 친구로 가깝게 지내며 오마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에스트리드(Astrid Menks)를 소개해줬다. 그녀는 1년 후 버핏과 동거에 들어갔다. 79년 49살의 버핏이 ABC 방송 주식을 사들일 때의 순자산은 1억4천만 달러나 되었지만 연봉 5만 달러를 받으며 검소하게 생활했다. BH사 주식은 연초 775 달러에서 ABC 방송주식 매입 후 연말에 1,310 달러로 뛰었고 그의 순자산은 6억2천만 달러로 수직상승, 포브스지 선정 400인 부호명단에 올랐다. 그의 명성은 월가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가 사는 주식을 매입하면 10% 단기수익은 보장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86년 85만 달러짜리 중고 팔콘(Falcon) 자가용비행기를 구입해 미국내 여행을 즐겼다. 사업을 위한 버핏의 유일한 사치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87년 10월19일 증시폭락(Black Monday)때 버핏은 동요되지 않았다. 88년에는 코카콜라사 주식 7%를 10억 달러에 매입했다. 6살 때 친지들에게 코카콜라를 판지 52년 만에 대주주가 되었다. 그는 체리코크를 즐겨 마신다. 89년 BH사 주식은 주당 8천 달러로 올랐고 59살의 버핏 자산은 38억 달러로 불어났다. 91년 자신이 투자한 솔로몬사(Solomon Brothers)를 경영하던 굿프로인드 사장의 부정을 눈치 채고 사표를 종용하는 거래를 했다. 굿프로인드가 사표를 내자 미 금융감독기관(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은 그에게 벌금 10만 달러를 부과하는 한편 더 이상 금융계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추방령을 내렸다. 그러자 버핏은 처음 약속한 보상액을 줄 수 없다고 태도를 바꿨다. 굿프로인드가 3,5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요구하자 버핏은 절반으로 흥정하려 했다. 이에 굿프로인드는 보상금을 5,300만 달러로 늘려 제소했지만 중재자 판결에 의해 한 푼도 받지 못했다.
 
99년 69살의 버핏은 카슨그룹(Carson Group)에 의해 피터 린치와 존 템플턴을 앞서는 20세기 최고투자가로 선정되었다. 하이텍붐으로 내재가치 중심의 주식이 미미한 수입을 올리자 월가 일각에서는 ‘버핏의 종말’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는 “하이텍사업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끝내 하이텍 주식을 사지 않았다. 마침내 하이텍 거품이 꺼지자 그의 주식은 치솟았다. 2002년 미국달러 강세를 직감, 미화 선물거래로 20억 달러의 순익을 올렸다. 2004년 전부인 스잔이 세상을 떠났다. 샌프란시스코를 자주 왕래하며 운명 직전까지 간호를 아끼지 않았던 버핏은 비통감에 빠졌다. 스잔 사망 후 동거녀 에스트리드와 결혼식을 올렸다. 작년 말 포브스지는 재산 620억 달러의 버핏을 세계 최고갑부로 선정했다. 그러나 최근 금융위기로 재산은 반 토막 났다.
 
Yoo글 : 유동환 (DY & PARTNERS 대표)
416-391-3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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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March 13, 2014

Filled Under: Column, 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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