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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그릇 때문에 (탈북수기) 2

그날 나는 이웃 농촌부락으로 장사를 떠났다.
죽은 아내가 평소에 입던 옷가지들과 나의 손목시계를 가지고 농촌에 가서 옥수수 몇 키로를 바꾸어 오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아침에 집을 나설때 저녁에 늦게 돌아올 것을 예견하여 어린 세 자식들의 저녁밥까지 지어 담아놓고 떠났다.

나는 그날 몇십리를 걸었다.
농촌부락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입던 옷가지들과 손목시계를 사 달라고 구걸했다.
장사가 아니라 구걸이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어렵게 사는 세월이어서 사람들은 선뜻 내가 들고다니는 물건을 사려고 하지 않았다.
나중에 작은 농촌부락의 한 노인이 초줴한 나의 몰골을 측은히보더니 “자네도 몹시 급한 모양이군”라고 중얼거리며 강냉이 3kg을 내다주고 내손에서 손목시계와 입던 옷가지들을 받아주었다.

나는 강냉이 3kg을 들고 나는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아홉살짜리 둘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오길 기다린듯 막내 딸애가 울먹이며 말했다.
“작은 오빠는 아버지가 나간 다음에 내 밥과 큰 오빠밥을 몽땅 훔쳐먹고 도망쳤어”

나는 어렵지 않게 내가 없는 사이 집에서 있은 일을 짐작했다.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 허약해진 둘째가 참지 못하고 제형과 동생의 밥까지 훔쳐먹은 것이었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욕설이 무서워 집에서 도망친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아이들에게 음식을 대충 해먹이고 집을 나섰다.

둘째가 갔을만한 곳을 모조리 찾아헤맸다.
평소에 밥 한그릇 때문에 아들애에게 욕을하고 매질까지 했던 자신을 가슴아프게 돌이켜 보며 역전 대합실과 집 근처의 다리아래, 장마당의 구석구석을 찾아보아도 둘째는 없었다.
다음 날도 나는 종일 둘째를 찾아헤맸지만 그애는 나타나지 않았다.

둘째는 두달 후 시체가 되어 나의 앞에 나타났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매일같이 둘째를 찾아 헤매는 나에게 안전부(지금의 보안서)에서 연락이 왔다.
두만강에 빠져죽은 아이시체를 하나 발견했는데 혹시 잃어버렸다는 둘째가 아닌지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두만강으로 달려갔다.
두만강으로 달려간 나는 가슴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두만강에 빠져죽은 아이는 둘째였다.

둘째는 몰래 중국에 건너가서 (움쳤는지 아니면 구걸했는지 알 수 없지만) 강냉이 몇 키로를 얻어가지고 집에 오려고 두만강을 건느다가 죽었다.
둘째가 건너오다가 죽은 두만강의 멀지않은 곳의 여울가에는 작은 강냉이 자루가 하나 걸려 있었다.

둘째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억이 막혀 아무 말도 못하는 나에게, 둘째의 시체를 처음 발견했다는 국경경비대 군인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강냉이 자루를 등에 지지 않고 강을 건넜으면 죽지는 않았을텐데…”
결국 아홉살 밖에 안된 어린애가 강냉이 자루를 업고 강을 건느다가 죽었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날 둘째를 두만강가의 산기슭에 묻고 오랫동안 울었다.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사람처럼 살아보지 못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어린나이에 억울하게죽은 둘째의 무덤앞에서 나는 가슴을 칼로 에이는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소리내어 울었다.

그 날 나는 처음으로 국가에 대한 반감을 가져보았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고 수많은 사람들과 어린 아이들이 비참하게, 불쌍하게 숨져가는데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또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계속]

탈북자 이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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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December 4, 2013

Filled Under: Article, Column,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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