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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회장의 모든 것

“35살까지 가난하면 그건 당신 책임이다.”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그의 말은 거침이 없습니다. “당신의 부모님이 물려줄 돈이 없더라도, 아무도 당신을 동정해주지 않는다.” 알리바바 미국 증시 상장으로 26조원의 재산을 가지게 된 마윈의 말입니다. 전세계가 알리바바와 마윈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는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요? 마윈과 알리바바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풍청양(펑칭양). 무협소설 마니아라면 알고 있을 만한 이름이지만 대부분이 모를 이름이다. 중국 무협소설의 대부로 ‘신필’(神筆)로 불리는 김용(진융)의 소설 <소오강호>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심지어는 주인공도 아니고 잠깐 나타나 주인공 영호충에게 검법을 가르쳐준 사부일 뿐이다. 영화 팬들을 위해 보충설명을 하자면 같은 작품에 나왔던 ‘동방불패’에 비견되는 고수 정도로 알면 된다.
 
오랜 무협소설 팬이 아니라면 기억도 못할 이 가상의 인물 이름이 요즘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미국 뉴욕증시에 기업공개(IPO)를 하며 대박 신화를 쓴 중국 온라인 유통기업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영어이름 잭 마) 회장 때문이다.
 
그는 김용 무협소설의 광팬이며, 자신의 별호를 풍청양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의 풍청양 사랑은 대단해서, 고객제일·단체합작·변화포용·성신(誠信)·격정·경업(敬業) 등으로 이뤄진 알리바바의 9대 가치관에 풍청양이 사용하는 무술인 ‘독고구검’(獨孤九劍)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고, 새로 만들어지는 <소오강호> 티브이 시리즈에서 풍청양 역으로 출연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결국 출연은 무산됐지만. 그는 왜 화려한 주인공도 아닌 주인공의 스승 풍청양을 자신의 애칭으로 삼았을까.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다. “나는 최고의 인재를 찾아내서 그들을 훈련시키고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예전에 선생이었고, (알리바바를 이끌고 있는) 지금도 선생이다. 그들(직원)을 나보다 훨씬 훌륭하게 만들고 있다.”
 
알리바바가 지난 19일 미국 뉴욕증시에서 상장해 ‘대박’을 쳤다. 공모가가 68달러였지만 이날 11시45분 공개된 첫 매매가격은 92.7달러였고 장중 100달러까지 육박했다. 첫날 시장가격이 공모가 대비 38.07%나 상승하면서 알리바바의 시장 가치는 2314억달러(241조6000억원)가 됐다. 25일 현재 주가는 88.92달러로 가치가 조금 하락하기는 했지만 구글, 페이스북 등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기업가치다. 미국 기업공개 역사상 가장 높은 기록이며, 같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과 이베이를 합친 것보다 훨씬 높은 가치다. 상장 뒤 마윈의 재산은 250억달러(26조원) 정도로 추산되며, 단숨에 중국 제1의 부자가 됐다. 알리바바와 마윈이 엄청난 이야깃거리가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마윈의 키와 몸무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작고 삐쩍 말랐다. 하지만 그는 현재 중국 최고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그의 팬덤은 신앙에 가까운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현재 중국에서 공산당 말고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그라고 표현할 정도다.
 
China-Based Internet Company Alibaba Debuts On New York Stock Exchange
 
마윈의 삶은 워낙 드라마틱해 벌써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작 소식이 들린다. 그는 1964년 저장성 항저우의 평탄(評彈·핑탄) 배우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평탄은 항저우 지방의 전통 공연으로, 우리나라의 판소리와 비슷하지만 좀 더 연극적인 면이 강하다. 하지만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으로 평탄 공연이 금지되면서 마윈의 집안은 생계를 꾸리기도 힘들 정도로 곤궁해졌다.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이 ‘죽의 장막’을 걷어낼 때 청소년이 된 마윈은 영어에 매료됐다. 그가 영어 연습을 위해서 12살부터 9년간이나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45분이나 걸리는 항저우 호텔로 가 지나가는 외국인을 붙잡고 무료로 도시를 안내해 준 억척 소년이었다는 에피소드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대입시험에 두번 낙방한 뒤 항저우 사범대학에 들어가 영어교육을 전공했고, 그 뒤 항저우전자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로 일했다. 당시 그의 수입은 한달에 12달러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마윈이 처음 창업에 나선 것은 1994년으로, 중국 문서를 영어로 번역하거나 통역을 해주는 사무소를 열었지만 실패했다. 이는 그가 출장차 미국을 오가면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처음 만나게 된 계기가 됐다.
 
앞으로 인터넷 세상이 올 것이라고 직감한 그는 중국판 인터넷 옐로페이지(업종별 전화번호부)인 ‘차이나 페이지’를 창업했지만 이 역시 실패했다. 중국 최초의 인터넷 기업으로 꼽히는 이 기업은 준비 부족과 중국 내 인터넷 인프라 부족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한 강연에서 그때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1995년께 중국에서 인터넷 사업을 하면서 매우 외로웠다. 누구도 날 믿지 않았고, 나도 내가 뭘 말하고 있는지 몰랐다. 심지어 나는 컴퓨터 기술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가 갖고 있는 것은 인터넷 세상이 올 것이라는 확신뿐이었다.
 
그사이 잠시 대외무역부에서 일했는데, 어느 날 만리장성으로 외국인 1명을 안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외국인이 바로 야후의 창업자 제리 양이었다. 2004년 야후가 알리바바의 40% 지분을 받는 조건으로 10억달러를 투자하는 계기가 된 만남이었다.
 
마윈의 성공 신화는 1999년 그가 친구 17명과 함께 알리바바를 창업하면서 시작됐다. 그의 아파트에서 창업된 알리바바는 초기에는 단 한건의 거래도 성사시키지 못하면서 출범하자마자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2000년 소프트뱅크 창업자인 손정의한테서 2000만달러의 투자를 받으며 위기를 넘김과 동시에 국내외에서 화제를 모으며 사업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알리바바는 기업대기업(B2B) 온라인 쇼핑몰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중소기업이 만든 제품을 전세계 기업들이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만큼 성공은 약속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003년부터 이익을 내고 있는데 미국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이 분기당 1억달러가 넘는 적자를 내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
 
알리바바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 부유층을 겨냥한 온라인 백화점 ‘티몰’ 등 다양한 회사들을 만들어 나갔다. 타오바오가 창립될 당시 중국의 온라인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이베이였다. 마윈은 글로벌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여러차례 이베이와 “전쟁을 벌이겠다”고 말해왔는데, 당시 반응은 비웃음에 가까웠다. 하지만 현재를 보자. 이베이는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고, 타오바오는 중국 인터넷 상거래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해외직거래 창구로 유명해진 알리익스프레스도 알리바바의 자회사다.
 
중국에서 알리바바그룹의 위세는 대단하다. 여러 외신이 정리한 자료를 보면, 알리바바를 통한 거래는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에 이르고, 중국 국내 소포의 70%가 알리바바 관련 회사들을 통해 거래되는 물품들이다. 중국 국내 온라인 거래의 80%가 알리바바 계열사들을 통해 이뤄진다. 그런데 이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 중국 인구의 절반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온라인 거래를 하는 사람이 6억명뿐(?)이지만 곧 세계 최대의 온라인 시장인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회계법인 케이피엠지(KPMG)의 추정으로는 2020년이면 중국의 전자상거래 금액이 미국·영국·일본·독일·프랑스의 전자상거래 금액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커진다. 현재 점유율이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알리바바는 초거대 기업이라는 말조차 무색할 정도의 덩치를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알리바바의 성공 원인은 무엇일까? 독일 <차이퉁>은 그 원인을 중국인들의 마음을 잘 공략한 데서 찾는다. 이베이가 판매액 일부를 수수료로 떼가는 반면 타오바오는 수수료가 없다. 매출은 온라인 광고와 기업고객의 누리집 디자인, 검색순위에 상위로 올리는 대가로 받는 돈 등으로 올린다. 또 ‘알리페이’라는 이름의 독특한 결제 시스템을 개발한 것도 주효했다. 소비자가 타오바오에서 물건을 사면 이체한 금액은 판매자에게 가지 않고 알리페이에 예치된다. 배송이 완료된 뒤에야 알리페이에서 판매자에게 돈이 건네진다. 온라인 쇼핑에서 사기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중국인들의 의구심을 해소해준 것이다. 알리페이는 알리파이낸스로 발전했고, 공과금 결제에 이어 디지털 신용카드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국영은행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대다수의 중국인들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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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윈으로 돌아가자. 마윈은 배우인 부모의 피를 이어받은 덕분인지 매우 쇼맨십이 강하고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데가 있다고 주변에서 평가한다. 게다가 일에서는 매우 공격적이다. 그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풍청양의 독고구검이 방어초식은 하나도 없이 공격초식으로만 이뤄진 것을 떠올리게 한다. 홍콩의 스위스 투자은행에서 일하던 차이충신이 그와 한번 면담한 뒤 거액의 연봉을 포기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알리바바에 합류한 것만 봐도 그의 흡인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짐작할 수 있다.
 
차이충신 알리바바그룹 부회장은 마윈과의 첫 만남에 대해서 <포브스>에 이렇게 말했다. “대만에 있는 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항저우의 이 남자를 꼭 만나봐야 해. 그는 좀 미친 것 같지만 그래도….’ 마윈을 만났을 때는 회사도 없었고 홈페이지 하나만 덜렁 있었다. 그런데 난 그에게 완전 빠져버렸다.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로 엄청난 비전을 쏟아냈다. 수익모델이나 이익 같은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중국에 수백만개의 공장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들을 서방세계에 알리고 양지로 끌어낼 수 있을까?’ 그때 이미 마윈에게는 한 떼의 추종자가 있었다. 대부분은 그의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눈가에는 광채가 났고, 모두 미친 듯이 일하고 있었다. 난 완전히 압도돼 버렸다.”
 
마윈은 뛰어난 기술을 가지지도 않았고 체계적인 경영수업을 받은 적이 없다. 그는 2008년께부터는 경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고, 지난해에는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은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구성원들에게 설파하는 것이다. 직원 앞에 서서 이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강조하고, 계속 열심히 한다면 별장과 스포츠카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격려하는 식이다. 그는 중대한 경영결정을 할 때 직관에 의존하는 편이며 그 결정의 이유를 제대로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이런 스타일 때문에 ‘독재자’라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창업이 바로 부자가 되는 길이라는 그의 설파는 청년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거의 종교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2008년 출간된, 그에 대해 분석한 한 책의 제목은 ‘마윈교(敎)’였다.
 
올해 초 그는 한 강연에서 “35살까지 가난하다면 그건 네 책임이다. 당신이 가난한 이유는 야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35살은 그가 알리바바를 창업한 나이다. ‘하면 된다’ 식의 그의 성공관은 열광과 냉소를 동시에 얻고 있다. 야후를 인수하면서 마윈이 보여준,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중국 정부에 협조하는 자세도 비판의 대상이다. 그는 “주주들이 우리가 정부에 저항해 부도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하라면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윈과 알리바바는 계속 성공 신화를 써내려갈까.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답은 역시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의 거대한 인구가 인터넷으로 움직이고 알리바바의 위치가 계속 공고하다면 지금의 성공은 서장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의 신화가 너무 빨리 무너져내리는 것을 자주 봐왔다. 중국의 잭 웰치라 불리던 장루이민이 이끄는 가전업체 하이얼, 워런 버핏이 투자해 화제를 모은 배터리·전기차업체 비야디(BYD), 미국 증시에서 상장해 돌풍을 일으킨 태양광 업체 선테크파워 등 당장이라도 세계를 정복할 것처럼 보였던 업체들 상당수는 지금 부도가 났거나 경영난에 빠져 있다. 기술력 부족이나 경쟁 업체의 난립 등으로 세계 시장에 제대로 나서기도 전에 중국 안에서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포브스>가 경고한 대로 알리바바 열풍이 ‘알리버블’이 될지, 새로운 역사의 첫 페이지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기사출처 :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http://www.huffingtonpost.kr/2014/09/27/story_n_5891982.html?utm_hp_ref=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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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September 27, 2014

Filled Under: Headline, News, Old Headlin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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