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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통일’ 작곡가 안병원선생의 삶과 사랑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는 그날을 기다리며
“내 소원은 판문점에서 남북의 ‘우리의 소원’ 대합창을 마지막으로 지휘하는 것”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가 무대에 올라섰다. 모두 기립한 참석자들과 노신사의 눈빛이 마주치는 가운데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노신사는 상기된 표정을 한 채 두 손을 치켜들었다. 이윽고 그가 두 손을 허공에 휘젓기 시작했다. 참석자들은 일제히 그의 손짓을 따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지휘봉 없이 두 손으로 지휘를 하는 노신사와 노래를 부르는 참석자들의 눈가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벽에는 태극기와 캐나다 국기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참석자들의 시선은 모두 태극기에 고정된 것 같았다. 노래 2절을 부를 때에는 그리운 조국을 향하는 마음에 목소리 톤이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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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지휘하는 모습을 그린 안병원선생의 자화상>
 
애국지사기념사업회에서 만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참으로 오랫만에 불러보는 노래다. 한국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녔다면 이 노래를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아마 없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도 이 노래는 다 알고 있다. 한국과 북한의 정상이 만났을 때 손에 손을 잡고 부른 노래가 바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었던가. 남녀노소 누구나 기억하고 있는 노래이자 지금도 3.1절 등 국가적 행사에서 불려지는 이 노래는 대한민국의 해방과 분단 역사만큼이나 오래 불려지는 노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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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올라 두 손으로 지휘를 한 사람은 이토록 많은 사람의 입에서 불려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작곡한 안병원선생이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당대에 함께 했던 사람들 외에는 노신사 안병원을 알아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겨레를 울리는 노래를 작곡한 장본인이 토론토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애국지사기념사업회에서 만난 안병원선생은, 낯선 땅 캐나다에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한인들에게, 평생을 조국을 그리며 사랑하는 애국자의 전형으로 다가왔다. 그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외에도 “송알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구슬비’라는 동요를 포함해 많은 동요를 작곡한 동요 작곡가로 기억된다.
 
외삼촌 악기점에서 음악에 빠진 소년
 
안병원선생의 아버지 안석주는 1920~30년대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로서 학예부장을 하면서 촌철살인의 그림과 문장으로 세인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만문만화’를 연재하신 분이다. 특히 신문 소설의 삽화와 예리한 만평은 독자들의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주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 안석주의 아호는 석영(夕影)이다. 저녁 그림자처럼 짧은 생을 살다 가셨지만 한국의 문화예술계에 끼친 영향은 대단했다. ‘토월회’ 멤버로 연극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으며, 한국 최초의 발성영화인 ‘심청전’을 감독해 대상을 받으신 분이다. 그런 아버지의 예술혼을 안병원은 물려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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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안병원은 음악전문 ‘동인음악(同人音樂)’ 출판사를 차린 외삼촌이 종로 2가에서 운영하는 악기점에 수시로 들러 노래도 배우고 클래식을 감상하며 음악의 세계로 점점 빠져 들었다. 그가 중학교 때 아버지를 따라 ‘빈 소년합창단’ 순회공연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어린 소년들이 내는 천상의 목소리에 감격한 안병원은 그의 미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도 어린이합창단을 조직해 세계일주 공연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꿈은 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해야 현실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는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음악감상, 작곡, 풍금 연습에 미친듯이 몰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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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동반자 노선영여사와 함께
 
그의 아내 노선영여사는 곱디 고운 소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1958년 가을에 세계 보이스카우트 잼보리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보이스카우트와 걸스카우트 단원들이 동대문운동장에 모두 모였다. 그는 서울 보이스카우트 대회 회장 자격으로 단상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운동장 중앙에 모인 ‘브라우니(초등학교 걸스카우트)’ 앞에서 브라우니의 선서를 하는 대장 노선영이 눈에 띄었다.
 
인생의 동반자는 하늘이 내려준다고 그랬듯이, 안병원은 브라우니 선서를 하는 처녀 노선영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광화문 사거리까지 진행된 행진 퍼레이드를 따라 군중들을 헤치고 달렸다. 그녀의 옆으로 달려가는 노총각 안병원의 열정과 구애는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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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선생이자 명문대가의 신부감인 노선영에게 안병원은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구애작전을 펼쳤다. 화분을 사서 학교 수위실로 보내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부탁해 메모지를 전달하기도 하는 정성과 노력은 3개월 후 결혼이라는 결실로 맺어졌다.
 
휴대용 전화기나 이메일이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 깨알같이 써내려간 편지와 직접 찾아가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젊은 연인들의 사랑은 어쩌면 편리만 추구하는 현대인의 사랑 풍속도와는 차원이 다른 낭만이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시인이기도 한 노선영여사는 안병원선생이 작곡한 동요 여러 곡에 작사자로도 자주 등장해 든든한 버팀목이자 동반자로서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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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 동요회
 
안병원은 그의 나이 19세인 1945년 여름, 일본군에 입대하라는 징병 통지서를 받았다.
군사훈련을 받고 전쟁터로 끌려들어가야 할 운명을 앞두고 8월 15일 해방을 맞았다. 한두 달만 먼저 입대했더라면 그가 살아돌아왔을 확률은 희박했을 것이다.
 
그의 음악 인생에 있어 ‘봉선화 동요회’는 매우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했다.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 그는 권길상과 ‘봉선화 동요회’라는 어린이 단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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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15일에 발표된 ‘봉선화 동요회를 모은 뜻’이라는 취지문에는 “동요와 우리나라 노래와 동요극 등을 보급하여 새 날의 기쁨을 온 민족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몇몇 초등학교와 주일학교에서 장애경(애경 회장)을 비롯해 노래 잘하는 아이들이 35명이 모인 ‘봉선화 동요회’의 역사적인 태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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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남과 북이 함께 애창하는 겨레의 노래인 ‘우리의 소원’은 ‘봉선화 동요회’가 처음 불렀다. 해방 직후 이념과 사상의 혼란과 남북 분단이라는 질곡의 환경 속에서 동요는 겨레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치료제와 같았다. 그리고 6.25 한국전쟁의 와중에 찢기고 폐허가 된 절망의 대지 한반도에 나뒹구는 상처투성이 한민족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던 ‘우리의 소원’은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밭에서 나온 겨레 사랑의 결정체였던 것이다.
 
우리의 소원은 독립 –> 우리의 소원은 통일
 
1947년 어느날 중앙방송국 어린이 프로그램 담당 배준호가 안병원을 찾아왔다. 배준호는 “해방 후 두 번째 맞이하는 3•1절에 색다른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없느냐?”고 안병원에게 물어왔다. 그들은 의논 끝에 ‘독립의 날’ 노래극을 만들자는데 합의를 보았다. 그들은 안병원의 아버지 안석주로부터 25분짜리 노래극 원고를 받아냈다. 노래극에 나오는 다섯 곡은 모두 안병원이 작곡을 맡았고, 출연진은 안병원이 만들어 지휘하던 ‘봉선화 동요회’가 담당하기로 했다.
 
안병원선생은 “친구 권길상의 아버지가 목사로 있던 명륜중앙교회에서 밤낮으로 살다시피 했어. 풍금을 두들기다 말고 교회 의자에 드러누워 그대로 쓰러져 밤을 새우기도 했지. 그렇게 수주 동안을 뒹굴며 고민하던 끝에 5곡의 노래를 작곡하게 되었어. 그 가운데 하나인 ‘독립의 노래’는 일주일 동안의 고통 속에서 탄생했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우리의 소원은 독립, 꿈에도 소원은 독립…’으로 시작하는 ‘독립의 노래’가 탄생했다. 이 노래는 3.1절 하루 전인 2월 28일 오후 2시 종로 YMCA 대강당에서 열린 삼일절 기념 아동음악회에서 ‘봉선화 동요회’가 먼저 합창으로 불렀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3.1절 오후 5시 30분 방송을 타고 전국 곳곳에 퍼져 나갔다.
 
안병원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애당초에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라는 노랫말로 만들어진 배경 설명을 이렇게 말했다. “당시 웬만큼 뜻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진정한 독립은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아버지 역시 우리 민족이 진정한 독립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당시 미군정이 계속되고 있었고, 정부 수립 문제로 좌우가 대립하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던 때였잖아.”
 
“1948면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되고 삼팔선이 막혀버렸지. 어느날 문교부로부터 ‘이제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고쳐 부르는 게 좋겠다’는 제안이 왔어. 그렇게 해서 1950년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처음 실리기 시작했던 거야.”
 
미국에 울려 퍼진 노래
 
6.25 한국전쟁이 끝난 다음해인 1954년에 안병원은 어린이합창단을 이끌고 3개월 동안 미국 전역에 순회 공연을 다녔다. 어린이합창단은 미국 전역을 돌며 한국전쟁에 참전해 도와준 미국에 감사하는 사절단으로 순회공연을 했다.
그가 이끄는 어린이 합창단이 부르는 동요와 미국 노래 ‘대니 보이’ 등을 부르면 6.25 참전 용사들이 합창단원들을 부둥켜 안고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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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가는 곳마다 미국 언론과 미국인들로부터 열띤 환영과 갈채를 받았다. 당시 순회공연은 많은 신문에 보도됐고 미 전역 97개 TV에서 방송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또 공연 도중 뉴욕 유라니아(URANIA) 레코드사가 어린이 합창단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다. 순회공연은 한미친선으로 이어지고 2,000만 달러의 경제부흥자금이 마련되는 물꼬를 트기도 했다. 어린이합창단이 귀국할 때는 카퍼레이드가 벌어질 정도로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전 국민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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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문화산업대학에 세워진 '우리의 소원' 노래 기념비>
 
부산 동대신동 15평 정도의 방에서 30명 가까운 단원들이 합숙하며 연습했던 어린이합창단원들은 전영자, 정명화, 이규도, 한동일 등 이름만 들어도 한국 음악계의 기라성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홀연히 캐나다로
 
서울중앙방송국(현 KBS)에서 음악담당을 했던 안병원은 대학 졸업 후 국방부와 해군의 정훈 어린이음악대장 겸 지휘자로 일했다. 서울 YMCA 어린이합창단 단장, 한국어린이음악사절단 단장, 경복소년단 대장, 서울시연합소년단 단장 등 어린이 음악계에서 활동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1952년부터 경기여중고, 경복중고, 용산중고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했으며 1968년부터는 숙명여대 음대 강사로 출강하던 그는1974년 어느날 홀연히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나이 들어서 이민 온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캐나다로 이주한 후 그가 겪은 고생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겨레를 울리는 노래를 만든 음악인이 험난한 캐나다 이민생활을 편안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철을 만드는 공장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생도 몸소 체험했다.
 
편의점과 베이커리를 하면서 이민생활에 뿌리를 내린 안병원과 아내 노선영의 본류는 예술인으로서의 삶이었다. 안병원의 왕성한 창작욕구는 그치지 않았다. 그는 토론토 YMCA 등에서 합창지휘를 하고 캐나다 한인 음악인 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작곡집 ‘우리의 소원’을 내는 등 왕성한 음악활동을 펼쳤다. 또한 한국복지재단 토론토 후원회 등에서 일하며 합창 지도를 계속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도 불리는 노래인 ‘우리의 소원’의 작곡자로서 남북송년통일음악회, 남북한겨레음악회, 통일음악회 등에 지휘자로 참가하기도 한 그는 2002년 4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봉수교회에서 ‘우리의 소원’을 지휘하던 감격스러운 장면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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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북한 태양절 기념식 참석 당시의 출입증>
 
그가 동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타내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1990년대에 저작권협회에서 동요로 분류되어 있는 이 곡을 다른 장르로 분류해 저작권료를 올려주겠다고 그에게 제의했을 때 그는 “남북한 동포들이 함께 부르는 민족의 노래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으로 만족한다. 그러니 그냥 동요로 놓아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즐겨 부를 수 있는 동요를 작곡하며 어린아이같은 순수한 동요인생을 살고자 원했던 것이다
 
미술로 여는 겨레 사랑
 
안병원선생은 음악인이 아니었다면 미술인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을 것이 분명하다. 그의 아버지 안석주선생의 피를 이어받아서 그런지 안병원선생의 그림은 남다르다. 그의 방에는 온갖 캔버스와 이젤, 물감 등 온갖 그림 도구들이 얼마 전까지 그림을 그리던 중이라는 걸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틈만 나면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느낀 장면과 감성을 화폭에 담는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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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이 성성한 나이임에도 전문 화가로서의 기량과 예술적인 안목을 지니고 있는 안병원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을 음악과 미술에 담아내고 있었다.
  
90년 남북송년통일음악회, 93년 남북한겨레음악회, 99년 통일음악회 등을 지휘했으며 2001년에는 북한 문화성 초청으로 ‘봄 예술대축제’에 참가한 이후 그는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 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2003년 안병원은 그가 토론토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복지재단(회장 김석산) 주최로 ‘북한 어린이 돕기 자선전’을 서울에서 열고 그가 그린 풍경화, 정물화 등의 유화작품 61점을 판매해서 전액 자선기금으로 내놓았다.
 
나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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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원선생과 그의 아내 노선영여사가 살고 있는 토론토의 아파트 거실과 부엌에는 온통 그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그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그림이 있으니 그것은 그의 아버지 안석주선생이 직접 그리신 자화상이다. 영화감독까지 하신 아버지의 젊은 시절 멋진 모습이 화폭에 담겨져 있다. 아버지의 일대기인 ‘모던보이 경성을 거닐다’와 창작 문집 ‘인간궤도’, ‘안석영 문선’을 출판한 효자 안병원선생과 평생의 내조자 노선영여사가 밟아온 족적은 반세기를 넘어 남북의 겨레가 함께 불러온 ‘우리의 소원’처럼 한국 현대사와 궤도를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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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원선생과 노선영여사의 소원은 기막힌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우리 생전에 남북통일이 되어, 판문점에서 남북한 어린이들과 함께 남녀합창단이 모여 ‘우리의 소원’ 대합창을 마지막으로 지휘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그리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흘러간 노래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소원’에 담긴 겨레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한반도를 휘돌아 북미대륙, 아니 5대양 6대주 전세계를 껴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기사 입력 : 2014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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